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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편

[#026] 머리카락 연대기 - 일반 Ver.

나프탈렌캔디 2017. 10. 24. 07:05




나는 한 달에 한 번 머리를 자른다. 이건 고등학교 때부터 유지하고 있는 패턴으로, 지금은 생소한 풍경이지만 그때는 두발검사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긴 머리를 하거나 꾸미고 다니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은 관심도 소질도 없었기에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단지 머리가 길다고 한 소리 듣는 게 싫어서 미리미리 짧게 잘라 버리곤 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나는 바로 미용실로 달려가 머리를 염색했다. 난생 처음 해보는 갈색 머리가 너무 어색해서 적응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나의 머리 염색의 여정은 시작됐다. 일단 시작을 하니 갈수록 과감한 색에 도전하고 싶어졌다. 군대 가기 직전까지 노란색, 빨간색을 포함해서 최소 다섯 번은 바꿔본 것 같다.


노란색은 당시 같이 살던 친구를 꼬셔 충동적으로 했는데, 미용사 누나가 색깔이 아주 예쁘게 나왔다며 엄청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완전 샛노란 내 머리를 보던 한 여자아이는 노랑머리 앤이라고 가사를 바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같이 있던 엄마가 몹시 당황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끄는 것 같아 좀 불편했지만 이 때 아니면 못해볼 것 같았다.


때론 과감한 머리에 도전해 보고 싶었지만 어울리지 않을까 두려워서 미리 포기하곤 했다. 그래서 머리 색깔만 알록달록하게 바꾸는 정도의 변화만을 시도하며 20대를 보냈다. 그리고 서른 초반이 되어서 일생일대의 결심을 하게 된다. 파마란 것을 해 보기로. 근데 정확히 무슨 파마를 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평소에 뜨는 옆머리가 너무 고민스러웠는데 나를 담당하던 미용사에게 그 문제를 상담했다. 그 해결책으로 나온 것이 파마였다. 옆머리를 짧게 자르고 윗머리를 파마로 띄우면 된다는 거였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긴 시간을 지루함과 싸워 얻은 파마 머리는 내 생에 가장 적응하기 힘든 스타일이었다. 다행히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는지, 주위 사람의 반응도 괜찮은 편이었다.


파마는 한 달이 지나자 덧없이 풀려버리고 나는 원래의 머리로 돌아왔다. 매달 파마를 하기엔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요즘은 투 블록 컷으로만 밀어 부치는 중이다. 이것도 너무 오래해서 바꿔보고 싶지만 이제는 새로운 머리가 엄두가 나지 않는다. 혹 어디 일 년 정도 갇혀 있다면 장발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돌이켜 보니 머리에 이것 저것 해보려고 많이 노력은 했던 것 같다. 워낙 관심이 별로 없고 부지런하지 못해서 남들처럼 다양한 것 같진 않다. 나도 나이가 드는지 돼지 털처럼 뻣뻣하던 머리카락이 이제는 얇고 약해지고, 풍성하던 숱도 듬성듬성해 지는 게 보여 슬퍼진다. 벌써 머리에 신경을 쓸 나이가 벌써 되었구나.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머리가 몇 개 남아 있기는 한데, 아마 힘들지 않을까 싶다. 나이는 둘째 치고 그 만큼 기를 자신이 없다. 처음에 말했듯이 한 달에 한 번씩 머리를 자르면 좀처럼 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좀 지저분해 보이는 걸 참아야 기를 수 있다는데 이번 생에는 힘들 것 같다. 정말 해보고 싶었는데 드레드 스타일.


그래도 나름 하드캐리 하고 있는 나의 머리카락들에게 힘내라고 응원을 보내고 싶다. 잘 관리해 줄 테니 우리 오래가자. 이상 머리카락 연대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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