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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편

[#055] 갑을 관계: 인피니티 워 - 일반 Ver.

나프탈렌캔디 2017. 12. 5. 06:55





우리나라 계약서에는 갑과 을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계약의 당사자인 갑과 을은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 내용을 성실히 이행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갑은 을에게 일을 의뢰하는 의뢰인이자, 을을 직원으로 고용하는 고용주이고, 을에게 금전적인 대가를 지급하는 고객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갑과 을이 동등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뉴스를 보면 ‘갑질’이나 ‘갑의 횡포’라는 말이 등장한다. 갑이라는 말 뒤에 ‘질’이나 ‘횡포’를 붙인 까닭은, 을이 받고 있는 피해가 그 정도로 크다는 뜻이다. 갑은 언제든지 을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고 을은 거기에 대항할 힘이 없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을은 이런 갑의 횡포를 눈물을 삼키며 참을 수밖에 없다.


불평등한 갑을 관계는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이미 오래전부터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오르기까지 시간이 걸린 까닭은, 을이 갑에게 문제를 제기했을 때 받는 불이익이 컸기 때문이다. 생계 수단이 걸린 을의 입장에서는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갑에게 반기를 들 수는 없었다. 


그런 을의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갑은 더욱 큰 소리를 칠 수 있다. 상대방의 약점을 쥔 자가 얼마나 비열해질 수 있는지 상상이 가는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인터넷으로 기사를 살펴보면 정말 기상천외한 갑질 사례들이 많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추악한 그들의 행위는 단순한 괴롭힘을 넘어선 범죄 행위이다.


대기업 회장과 자녀들, 군 장성과 부인, 국회의원, 고위직 공무원들과 같은 사회적으로 갑의 위치에 있는 자들의 갑질을 보면, 대부분이 을로 살아가는 우리는 분노를 감출 수 없다. 그들의 행동은 욕 반 공기 반으로 표현하기엔 부족할 정도이다. 그런 인간들에게 을로 취급받는 게 정말 억울하게 느껴진다.


국가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병폐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정부 기관은 강력한 갑질 근절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쉽게 고쳐지는 병은 아닌 듯하다. 여전히 뉴스에는 잊을 만하면 갑의 횡포와 그 피해자들의 억울한 사연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처럼 갑에게 모든 힘이 집중된 상황을 바꾸지 않는 이상, 갑을 관계는 좀처럼 개선되기 힘들 것이다. 갑을 관계는 마냥 가까워지기엔 너무 서먹하고, 마냥 멀어지기엔 너무 불편하다. 힘이 있는 갑은 을의 피해 의식을 이해하기 힘들고, 힘없는 을은 갑의 무분별한 행동에 상처를 입는다. 이렇듯 확연하게 다른 서로의 입장을 갑과 을은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지만 갑의 생각과 행동은 여전히 예전과 같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갑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코 다칠 날이 온다. 이제 갑을 관계에서 을의 반격이 시작됐다. 언제까지 갑이 어깨춤을 추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원한 갑은 없고 영원한 을도 없다. 두고 봐. 숨지마. 기대해.

 

‘갑은 을을 이해하고 을을 이해하고 을도 갑을 이해하고 갑을 이해하고 갑을 서로 이해해주면서 그 누구도 싸움을 안 해요’ 같은 말을 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갑을 관계의 끝나지 않는 전쟁은 오늘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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