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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 속 옛날 공중화장실은 정말 끔찍한 곳이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와 오물로 가득한 내부를 보면 볼일을 보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곤 했다. 게다가 문과 벽 곳곳에 빼곡한 낙서들은 공중화장실의 이미지를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 그러나 요즘 공중화장실은 어디를 가나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고 심지어 좋은 향기가 나기도 한다. 그 뒷면에는 청소노동자들의 극한 노동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낙서가 있던 그곳에는 다양한 스티커, 전단지, 명함들이 대신해서 우리를 반겨준다.
어느 날 아침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찾은 화장실에서 홀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두커니 변기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오른쪽 벽에 걸린 플라스틱 화장지 케이스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거기에 적힌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오렌지색 쪽문’
너무나 이상한 단어였다. 그걸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여기에 쪽문이 있나?’였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쪽문은 없었다. 그 다음 든 생각은 ‘여기에 오렌지색으로 된 것이 있나?’였다. 하지만 검정색, 빨강색, 회색은 있어도 오렌지색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냥 몹쓸 누군가가 화장실에, 그것도 잘 지워지지도 않는 펜으로 낙서를 한 것이라 생각해 버리면 될 것을. 자연스럽게 머릿속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왜 오렌지색 쪽문이지? 살면서 오렌지색 쪽문을 본 적이 있던가? 왜 하필 여기에? 메모지가 없었나? 보라고 쓴 건가? 왜 하필 여기에? 무슨 이유로?
생각은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은 부풀리고 뒤틀려서 망상을 낳는다. ‘그래, 잘 찾아보면 이 건물 어딘가에 오렌지색 쪽문이 있을 거야. 그 쪽문은 강아지 출입구처럼 작아서 나는 머리를 숙이고 기어서 들어가야 하지. 반대편에는 아마 온통 하얗게 칠해진 방이 나타날 거야. 방 한 가운데는 검정색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어. 굉장히 수상쩍게 생긴 남자가 눈을 겨우 가릴 듯한 작은 선글라스를 끼고 앉아 있겠지. 한참을 조용히 무게를 잡고 앉아 있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말하겠지. “어서 오게.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다네.”’라고.
우리 앨리스는 잠시 혼자서 너무 멀리 헤매다 왔구나. 다시 집으로 돌아온 앨리스, 아니 나에게 그 낙서는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매번 그 낙서를 볼 때마다 당최 누가, 왜 거기 적었는지 생각해 본다. 그렇지만 나는 절대 알 길이 없다. 아마 죽을 때까지 알아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화장실을 쓰는 다른 사람들도 이 낙서를 봤을까?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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