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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첫눈이 왔다. ‘첫’이 붙는 말들이 그러하듯 첫눈이라는 말은 설렘을 품고 있다. 사람을 괜히 들뜨게 하고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잠시 잊었던 동심을 자극한다고 할까? 입동도 지나고 기온도 영하로 떨어졌지만, 역시 눈이 와야 겨울이 왔다는 실감이 든다. 하얗게 떨어지는 눈을 보고 있자니 많은 추억들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눈을 좋아한다. 하늘에서 내린 함박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으면 모두 신나서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물론 나도 눈을 참 좋아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내 고향은 눈이 많이 오지 않는 곳이라 20년을 살면서 눈이 쌓인 것을 본 게 손으로 꼽을 정도다. 가끔 눈이 와도 쌓이지 않고 녹아버려서 눈사람은커녕 눈싸움을 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함박눈이 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지르며 밖으로 나갔다. 얼마 되지도 않는 눈을 뭉쳐 서로에게 던지고 맞고 하면서 축제를 즐겼다. 옷과 신발이 흠뻑 젖는 것도 모른 채 놀다가 축축해진 꼴로 집에 돌아가면 엄마의 꾸지람이 이어졌다. 그래도 즐거웠던 건, 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눈이 좋았다. 학교가 있는 동네는 겨울에 엄청 춥고 눈도 많이 왔다. 게다가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살을 에는 바람을 그대로 맞고 다녀야 했다. 4월에 신촌에서 사람들이 봄옷을 입고 다닐 때에도 두꺼운 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펑펑 오는 눈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았다. 술도 한 잔 곁들이면 낭만이라는 것이 폭발했다.
그러나 눈에 대한 낭만은 군대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내가 군 복무를 했던 곳은 강원도 철원이었는데, 아시다시피 그곳은 겨울에 그냥 눈이 아닌 폭설이 내리는 곳이다. 군인에게 눈은 그저 하늘에서 내려오는 쓰레기란 말이 있다. 왜냐하면 민간인들과 달리 눈이 오면 좋아서 구경하는 게 아니라 싹 다 치워야 하니까.
눈은 치우고 치워도 끝이 없었다. 빗자루로 눈을 쓸다가 뒤를 돌아보면 다시 눈으로 하얗게 덮이고 있었다. 그러면 잠시 눈이 그치길 기다렸다 다시 나와서 쓸었다. 빗자루로 해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쌓일 때에는 넉가래로 밀고 눈삽으로 퍼서 치웠다. 밖에선 제설차로 한방에 밀어버리면 될 일을 군대에선 수십 명이 하루 종일 매달려서 눈과 씨름했다.
눈이 온 후의 한반도 위성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유독 눈이 깨끗하게 치워진 곳이 있었는데, 바로 군부대가 밀집해 있는 비무장지대였다. 거기서 눈을 치우던 군인이 나였다. 그렇게 2년을 전쟁을 치르고 나니 눈이라면 정나미가 떨어졌다. 전역한 후에도 눈이 오는 걸 보면 진저리를 쳤다.
눈을 치우느라 고생했던 시절의 기억도 이제는 추억이 된지 오래다. 폭설이 내리면 그걸 치울 사람들이 걱정되긴 하지만 예전처럼 욕을 하면서 싫어하지는 않는다. 길이 미끄러울 테니 조심해서 출근해야지 하는 정도의 생각만 한다. 창 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며 커피 한 잔을 하는 새로운 낭만도 생겼다.
내리는 눈을 보니 가사에 ‘Let It Snow’가 반복되는 캐럴이 생각났다. 아마 주말에 본 크리스마스 트리 때문인지도. 이번에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바라며,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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