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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친절한 사람을 좋아한다. 따뜻한 말과 함께 다정하고 세심하게 챙겨주는 사람을 싫어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친절한 사람이 아니다. 남을 살갑게 챙기는 일이 익숙치도 않고, 굳이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큰 피해만 주지 않으면 굳이 남을 신경 쓰지 않는다.
나와 남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너무 가까우면 피곤하고, 너무 멀어지면 문제다. 복잡한 인간관계에 지쳤거나 굳게 믿었던 사람에게 큰 상처를 입어 본 사람이라면, 적당한 거리감의 필요성을 깊이 공감할 것이다. 남도 내 맘과 같을 거라는 순진한 기대는 언제든 산산조각 날 수 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주인공 신지는 인간관계에 서툴다.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와, 엄마처럼 따뜻하게 챙겨주는 미사토, 성격이 전혀 다른 동갑내기 아스카 중 그 누구에게도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마음을 의지할 데가 없어 몹시 외롭지만, 오히려 상처가 두려워 움츠러들고 만다. 게다가 겨우 14살 소년에게 갑자기 주어진 커다란 임무는 그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
신지는 그저 거대 로봇의 조종석 안에 갇혀 조종간을 꽉 붙든 채, 도망치면 안 된다는 말만 계속해서 외칠 뿐이다. 어쩌면 그가 도망치고 싶은 건 눈 앞의 무서운 적이 아니라,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대와 두렵기만 한 인간관계가 아닐까.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구도 관계의 연결고리에서 도망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마음은 없지만, 상처 받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신지는 굳게 마음의 벽을 닫고 ‘AT 필드’로 몸을 감싼 채, 타인이라는 이름의 사도들과 싸운다. 타인에게는 싫어도 웃어 야 하고, 아파도 씩씩한 척 해야 하고, 내키지 않아도 먼저 손을 내밀어야만 한다. 그렇게 친절해져야 남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예전의 나는 세상에 불만도 많고 남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곤 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멀리했으며, 내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느라 남의 충고를 잘 듣지 않았다. 혈기로 가득 찬 고집불통에 독불장군이었던 나는, 마치 날카롭게 날이 선 칼처럼 언제든 칼집에서 나와 무엇이든 베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문득 이제는 좀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한참 이등병 생활로 지쳐갈 때였는데, 밤에 초소에 서서 어두컴컴한 비무장지대를 보고 있자니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왜 그렇게 남들에게 모나게 굴었을까, 그때 왜 좀 더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았을까 같은 생각들을 하며 보냈다.
2년 간의 자기반성 시간을 가진 후,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친절한 금자씨>처럼 나도 이제는 좀 친절해 지기로. 나와 남에게 좀 더 너그럽고 다정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성격 자체를 바꾸는 것은 힘들겠지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친절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역시나 쉽지 않다.
그래도 나는 앞으로도 신지처럼 도망치지 않고 사도에 맞서는 소년이 되려고 한다. 잔혹한 현실의 테러에도 소년은, 신화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친절한 신지 씨는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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